대개의 지명은 그 지역 산천의 형세와 그 역할,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을 근거로 하여 오랫동안 사람들에 의해 공통적인 이미지 언어로 표현되어 오다가 지역의 고유 지명으로 정착되는 경우와 절대 권력자에 의하여 명명되는 경우 등이 있다. 따라서 각 지방의 지명에는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청송'은 왜 '청송'으로 명명되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청송으로 명명된 지 너무나 오래되어 당시 선조들의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우나 나름대로 개연성을 정리해 본다.
'청송'하면 모든 사람들이 의례히 산간 오지에 푸른 소나무가 많은 고장으로 연상하며, 사실 또한 군 면적의 83%가 임야고 푸른 소나무가 주종이니 지역 명칭을 '청송'으로 한 데 있어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이 지역에 아름드리 푸른 소나무밖에 내세울 것이 없어 청송이라 했을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청송이라는 지명이 얼마나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것인가? 아마도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우선 '청송군'이라는 지역 공간을 떠나 단순히 '청송(靑松)'이라는 자구 자체에 대한 뜻을 확대해석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이에 담긴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
'청송'이란 명칭이 이상의 세계, 신선의 세계를 의미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면 청송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종조 군수 하담이 찬경루를 창건하고 관찰사 홍여방(洪汝方)이 지은 기문에 청송을 묘사하기를 「송백은 울울창창한데 노을 구름이 멀리 덮혀 있어 맑고 그윽한 한 고을이 신선세계 그대로이니 이 곳이 바로 청송이다」 (松栢鬱乎蒼蒼烟霞 其靄靄淸幽一洞依然仙境者乃靑松也)라고 했다. (당시 관찰사 홍여방은 대구에서 출발하여 영일 형산강에서 뱃길로 동해와 오십천을 거슬러 올라와 다시 육로로 황장재를 넘고 진보를 거쳐 청송에 도착한 것으로 추측됨.)
일찍이 퇴계선생께서는 관향이 청송이며 진성 이씨로 항시 선대의 묘소가 있는 청송에 살아보기를 동경하면서 단양 수령으로 있을 당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靑松白鶴雖無分(청송백학은 비록 분수에 없으나) 碧水丹山信有緣(벽수단산은 참으로 인연이 있었네) 청송백학(靑松白鶴)은 청송에 백학이 어우러진 곳으로 신선세계를 말하며 또한 벽계단산(碧水丹山)의 벽계는 벽계수(碧溪水)로 은하수의 이칭이고 단산은 단구(丹丘:신선이 산다는 곳)로 신선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청송백학(靑松白鶴)은 청송을, 벽수단산(碧水丹山)은 단양을 뜻하면서 관념상의 이상의 세계를 뜻한다.
이와 같이 옛 사람들은 청송을 무릉도원 신선세계로 극찬하고 다시 주왕산의 기막힌 절경을 보고는 무어라 표현했을까? 선조 때 김용(金涌)은 주왕산을 묘사하기를 「은하수 가운데 옥경을 열었네! (銀漢中間闢玉京-旗巖詩 중에서)라고 했다. 즉 주왕산을 신선세계 중에서도 옥황상제가 있는 황도로 표현했으니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 김용은 학봉 김성일의 조카, 문과 급제, 임란 시 안동수성장, 체찰사 종사관으로 모병토적의 공이 있어 이조판서에 증직, 부인은 퇴계선생 손녀)
청송인들의 지명에 대한 정서는 우선 푸른 소나무를 생각하고 좀 더 나아간다면 깨끗한 자연 환경을 말한다. 만일 우리 청송이 이상의 세계, 신선의 세계와 닮았다면 왜 청송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만일 무릉도원과 같은 신선세계가 있다면 속세를 보지 않고는 자신이 신선세계에 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관찰사 홍여방, 퇴계선생, 운천 김용 같은 분들은 청송 밖에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비교적 청송을 잘 표현했을 것으로 믿는다.
청송은 오랜 역사의 변천과 함께 명칭을 수차례 개칭하여 왔으며 관내에 오래된 속현(屬縣)들의 지명이 있다. 이들 지명들은 청송이라는 명칭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관내의 지명들 중에서도 자세히 그 뜻을 음미해 보면 이상의 세계(이상적인 생활 공간)를 의미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행정구역 단위 마을명에 있어서는 월막(月幕),월외(月外), 덕동(德洞), 청운(靑雲), 송생(松生), 이전(梨田),부일(扶日),항동(項洞),구천(九川),양숙(陽宿),화장(花場),월매(月梅), 덕계(德溪),화목(和睦),고와(高臥),노래(老萊),송강(松江),광덕(廣德), 세장(世長),진안(眞安) 등으로 자연 부락까지 거론한다면 더욱 많을 것이다. 또한 방광산(放光山), 무장산(霧藏山),보현산(普賢山), 천마산(天馬山), 자초산(紫草山),산지봉(産芝峰),자하산(紫霞山),노래산(老萊山),비봉산(飛鳳山) 등의 명칭들은 상서로운 서기와 함께 신선이 깃들었음직하다.
여기서 일일이 지명에 대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대표적인 예로 주왕산면 이전(梨田)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이전은 옛 지명이 이전평(梨田坪)으로 배밭들이라 하겠으나 지명이 의미하는 속 뜻은 배밭들이 아닐 수 있다. 옛날 이전마을은 주산천을 따라 생긴 막다른 통로와 이전 마을을 중심으로 다소 넓은 생활 공간은 무릉도원을 연상케한다. 이전(梨田:배밭)이란 지명도 무릉도원의 도원(桃園:복숭아 밭)과 같은 뜻으로 복숭아 꽃잎이 물에 떠내려오듯 배꽃이 떠내려오는 또 하나의 신선의 세계를 뜻한다. 안덕 노래리에 배나무진이라는 자연 부락이 있는데 이곳의 지형 또한 규모는 작으나 형상은 같다.
청송에 소나무가 많다 하나 북쪽 산간 지방만 못하고 예로부터 타 지역에 비해 특별히 재질이 좋다는 말도 없었다. 따라서 소나무 자체로만 생각한다면 청송이 청송으로 명명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러한데도 청송을 청송이라고 명명했을 때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청송은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주왕산을 비롯하여 전역의 하천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청송의 풍속은 '검소하고 법도(인간 도리)를 잘 지킨다', '사람은 순박하고 습속은 순후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尙儉率,民淳俗厚). 이와 같이 아름다운 자연에 순후한 인심이 깃들었다면 이상의 세계를 의미하는 청송으로 명명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며 신선세계 무릉도원 아니라고 누가 의심하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환경과 문화가 자원이 되는 밀레니엄시대 즉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추구하는 21세기의 청송 발전 가능성을 천년 전에 미리 예견했던 일인가? 여기에 현 시대를 사는 우리 군민들에게 전통적인 순후한 민심을 되살려 화합하고 근면 성실하여 부디 이상적인 복지 사회를 만들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지나 않은지?
2005.03, 청송군청 민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