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1920년경 후송(后松)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20년경 후송(后松)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자형 안채와 "┗"자형의 중문간채 그리고 "┗"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아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우측부의 부엌을 제외한 각 면에는 툇마루를 돌렸으며,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구의 네귀에 모두 추녀를 단 집이다. 종도리 하면의 "단기사천이백팔십년상량, 檀紀四千二百八十年上樑”이란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 기록으로 미루어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것을 해방 후 1947년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튓기둥만은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후송헌(后松軒)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중문간채는 대청과 좌측의 사랑방이 다 같이 "┗"자형으로 안채의 앞에서 있고 사랑채와 함께 "튼 ㅁ"자로 내정을 에워싸고 있으며, 내정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비롯하여 마굿간, 방앗간, 하인들이 거처하던 방과 부엌 등이 설치되어 있다.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5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한옥이 변천해 온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배치 관계가 좋고 비교적 간소한 외관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