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백자는 절제된 선과 담백하고 고풍스러운 색으로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청송백자는 흙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백자와는 달리 '도석(陶石)'이라는 돌을 빻아서 빚는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인해
유백색을 띠며 그릇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청송백자는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후기 대표적인 생활도자기이다. 또한 해주백자, 회령자기, 양구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4대 지방요(地方窯) 중의 하나이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문경사기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활발하게 생산돼 왔다. 청송지역의 가마터 지표조사 결과 늦어도 16세기부터는 백자 제작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1423~1432년에 기록된 '世宗實錄地理志(세종실록지리지)' 慶尙道 安東大都護府 靑松郡條(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청송군조)에 청송군이 백토의 산지임을 기록하고 있어 16세기 이전에 이미 백자가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청송지역에서 확인된 가마터는 총 48기이다. 가마터는 청송도석의 출토지인 법수광산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이내에 위치하며 백자 가마터의 운영 시기는 16~20세기로 폭넓은 편인데 주로 17세기와 20세기에 운영된 가마터가 많다. 청송백자는 질 좋은 도석을 바탕으로 1920~1930년대에는 일본 각지로도 활발하게 판매됐으며 특히 동경의 三越商店(삼월상점, 현재의 미스코시백화점)으로도 수출될 정도로 명성을 크게 얻었다.
이후 1958년을 끝으로 중단되기도 했던 청송백자는 이제 마지막 사기대장 故고만경옹(청송군향토문화유산 1호)의 손에서 다시 복원⸱재현되었으며, 현재 그 기예를 이어받은 전수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인의 혼과 느림의 미학이 깃든 청송백자는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청송군만의 소중한 향토문화유산이다.
청송백자 복원사업으로 500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청송백자 전수관은 청송백자의 전통공방(사기움), 전통가마(사기굴), 주막 등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 놓은 곳이다. 움집형의 원형구조로 이루어진 전통공방(사기움)은 원료의 분쇄에서 성형과 유약작업까지의 모든 공정이 사기움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청송지역만의 독특한 구조이다. 도석에 의해 특화된 형태의 전통 가마와 가마에서 구워진 그릇을 서로 가져가기 위해 상인들이 며칠씩 묵으며 기다리던 주막은 번성하던 청송백자의 세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기움 건너 도석 광산의 채굴 흔적과 기계들은 옛 모습 그대로 있으며 광산 사무실은 옛 모습대로 복원돼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멸위기에 처해있던 청송백자 제작기술 등을 故고만경옹을 중심으로 2007년부터 다시 재현사업을 추진하였다. 故고만경옹(청송군향토문화유산 1호)은 청송사기의 제작기술 전승을 위해 사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가진 사기대장이었다.
故고만경옹은 청송 부남에서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열다섯 되던 해 부남면 화장리 웃화장공방(점주 곽명수) 사기공방에 들어가 백자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1947년 한소밭골 공방을 시작으로 설티, 웃화장, 질티, 법수 등에서 사기대장으로 일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발, 대접, 접시 등 막사발을 만들었다. 이후 1958년을 마지막으로 가마문을 닫을 때까지 15년간 백자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다. 백자 만들기를 배운지 3년 후 대장 노릇도 했지만 그 중간에 점주가 밑천이 달려 폐점을 하게 됨에 따라 다른 공방에서 일을 한 후 맏형과 같이 직접 공방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공업용 제품의 출현으로 경쟁력을 잃어 더 이상 사기대장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됐으며 1958년 공방의 문을 닫고는 대구, 포항 등지를 돌며 행상 농막일 등을 하며 생활을 하게 된다. 사기대장으로 독립해 좌절을 겪으면서 기능적으로 인격적으로 완숙한 장인의 경지가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스스로 절감한 고만경 옹은 이제 청송사기의 제작기술 전승을 위해 사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가진 사기대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랜 고된 노력 끝에 자신만의 비법을 축적해 가장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기능을 연마하여 원숙한 사기대장으로 청송백자 전수장에서 청송백자의 전승·보존과 전수자들에게 청송백자의 전통에 대한 가르침을 주며 그의 백자 인생의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다 2018년 숙환으로 귀토(歸土)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