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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

세시풍속

설날

대대로 지켜오는 고유의 명절로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맑은 물에 세수를 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웃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고 일 년 중의 행운을 기원하는 새해 첫날을 말한다. 정월 초하루 날을 또 다른 말로 원단(元旦)이라 하며, 이 날의 음식물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은 세주(歲酒)라 부른다. 이 날은 가을에 거두어들인 오곡으로 설빔을 하여 조상 제사를 드리는데, 이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 한다. 제사를 마친 후 이웃 어른을 차례로 순방하며 세배를 드리는데, 성년은 주과(酒果)를 대접받고 아이들은 돈을 받는다. 세배는 초하루 날부터 3일간 계속되며, 이미 작고 하신 마을 어른 빈소에는 사람들이 모여 편 윷놀이에 밤을 지새우는데, 이때만은 제수(弟嫂)와 시숙(媤淑) 간의 엄격한 예절도 예외로 화기애애한 뜻깊은 모임이 이루어진다.

부녀자들의 널뛰기, 남자들의 연날리기, 송아지 타기, 월월이 청청, 콩 심기, 작은 줄다리기 등 각종 놀이가 있어 정월 한 달 계속되며, 또한 복조리 돌리기 풍습이 있어 복을 담았다는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놓고 일 년 내내 쓴다.

동제

음력 1월 14일 밤에 대개 고목(당목)이나 당집에서 산신께 제사를 드린다. 제일(祭日) 며칠 전에 액운이 없었던 깨끗한 집을 선택하여 제주와 제관을 선정하는데, 제수(祭需)는 제주(祭主) 집에서 마련하고 밤 10시쯤 마을 앞개울가에서 목욕을 하고 조용히 지낸다.

제수(祭需)로는 ... 어물(漁物)은 생계, 문어, 조기, 물고기, .... 삼색과실(三色果實) 밤, 대추, 곶감, ... 흰 시루떡, 품, 초그릇(그릇은 사기그릇을 준비), 소지 올릴 백지 등을 준비한다.

제당(祭堂)은 동리마다 거의 마련되어 있는 성황당이며, 동구나무에 그 마을의 신이 내리는 것이라 여겨 산신령께 1년 내내 동리의 무고한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동제는 축관(祝官)이 축문을 읽는 유식동제(儒式洞第)이다. 가가호호 대주(大主)를 위해 소지를 올려주며, 제비(祭費)는 동민들에게 염출하여 지낸다. 이튿날은 동민들을 불러 음복을 하며, 1년 내 동행사에 관해 의논한다.

정월대보름

일명 상원(上元) 날이라고도 한다. 점세 적(占歲的) 행사의 일종인 정월 대보름에는 찰밥과 약밥을 만들어 먹고 윷놀이와 널뛰기를 한다. 널을 뛸 때 치마를 추켜 올리며 부르는 "싸래기 받아 닭 주고", "흰 계란 받아 개 주고" 등의 대창(對昌)이 있다. 부녀자들은 동산에 달맞이를 못 가는 대신 집에서 사주명(四株明)을 보고 옷고름이나 동정깃을 태워 액땜을 한다. 또 이날은 개를 굶기는 날이기도 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빌며 달불놀이(화통돌리기), 닭집 사르기를 하고 수수깡으로보리를 만들어 거름더미 위에 꽂아 넣고 풍년을 기원하며 흉년을 점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이날에 대한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오래된 명절이라 하겠다. 이 날은 귀가 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또한 온갖 질병과 부스럼을 씹어 없앤다는 의미로 콩을 볶아 먹기도 하고, 콩을 방 네 귀퉁이에 던져 놓기도 하고 밤으로도 부스럼을 깬다. 소에게 밥과 마른 풀을 주어 밥을 먼저 먹으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농민들은 일찍 일어나 장대로 처마끝을 돌며 새를 쫓고 새끼로 뱀을 만들어 불에 태우는데, 이는 흉물인 뱀이 집안에 못 들어오게 예방하는 영법인 바, 다시 말해 뱀의 화형이다. 줄다리기, 제기차기, 다리밟기 등 많은 풍속놀이가 있는데 줄다리기는 부락 대항으로 승부를 가리는데 지는 동네에는 흉년이 든다고 해서 결사적이다. 부녀자들은 치마에다 돌을 싸고 줄을 당기며 끌려갈 때는 울기까지 한다. 다리밟기는 주로 부녀자들이 중천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제각기 감회에 젖어 조심스럽게 행하는데 보름 다리를 밟으면 일 년 내내 다리가 안 아프다고 한다.

영등

2월 초하룻날 영등(靈登) 물을 떠놓고 찰밥이나 송편, 청어 등 영등 음식을 장만하여 풍년을 비는데, 영등할머니는 3명으로 2월 10일 상등 할머니가 올라가고 2월 15일은 2등 할머니가, 2월 20일은 하등 할머니가 하늘로 올라간다. 이 세 번째 마지막 할머니가 올라가는 20일에 영등 물을 떠놓고 빌며, 영등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 또한 하늘이 흐리고 추우면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고 하고 일기가 화창하면 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 날은 동네에서 농악놀이가 벌어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당 부엌 등에 지신을 밟아 그 집에 액운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노래를 부르면서 밟으며 그 집 형편대로 곡식이나 돈을 상위에 차려 내놓는다. 이를 걸립이라고 한다.

삼짇날

음력 3월 3일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지상에 올라오는 날로, 나비도 나오는데 만일 흰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그해에 상복(喪服)을 입게 된다고 하며,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게 되면 그해 행운이 오고 건강하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진달래 꽃전을 들고 산과 들에 나가 부쳐먹고 불놀이를 하며,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꿀을 타고 잣을 넣어서 먹는 화면(花麵)도 별미 중의 별미이나, 요즘은 행해지지 않는다. 또한 부녀자들은 물맞이를 하면 머리가 길어진다고 하여 깨끗한 샘물에 머리를 감는다.

한식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서 일명 냉절(冷節)이라 한다. 이 날을 길일(吉日)이라 하여 조상들의 묘소를 돌아보고 이장을 하거나 허물어진 곳을 새로이 단장한다. 옛날에는 조정에서 종교상의 이유로 일 년에 한 번씩 새 불을 만들어서 대궐에서부터 민간인에게 새 불을 반포하고 그 앞서 지난해 써오던 불을 못쓰게 하였으므로, 이 날은 불이 없기 때문에 지어두었던 찬밥을 먹게 되어 한식이라고 하였다.

옛날 중국의 춘추 시절에 진나라 조정에 풍파가 있어 임금의 아들이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개자추라는 충신이 왕자를 모시고 18년 동안을 갖은 고생을 겪어가며 망명생활을 하였는데, 그 후 왕자가 돌아와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오른 뒤 임금은 개자추의 공을 잊고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개자추는 임금을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살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뒤늦게야 임금은 개자추의 공을 깨닫고 그를 찾았으나 개자추가 한사코 세상에 나오지 않자 산에 불을 질러 그를 나오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개자추는 기어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가 죽은 날은 불을 멀리하고 찬밥을 먹었기 때문에 그날을 또한 한식이라 했다고 한다.

사월 초파일

4월 초 8일은 불탄일로서 고려 이전에는 불교의식이 성행되었으나 조선조에 와서 많이 축소되었다. 이 날은 신도들이 가까운 사찰을 찾아가서 부처님 앞에 축원을 드리며 밤에는 신도들이 불명이 적힌 갖가지 등을 내건다. 또한 등을 들고 일렬로 질서 정연하게 불경을 외우며 가례 행진을 하는 석가의 탄신일 명절로서 나라에서 국경일로 정하였다.

단오

음력 5월 5일은 연중 4대 명절의 하나로 옛날은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이 날 부녀자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몸에 좋다고 하여 창포물을 마신다. 이 날에는 으레 미나리국을 먹는 풍습이 있으며, 쑥이나 취같은 초록색의 산채를 떡가루에 섞어 찧어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쑥과 취의 향기가 풍겨 별미 중의 별미라고 한다.

이 날의 놀이로는 줄다리기, 그네 뛰기, 돌싸움, 공치기, 씨름 등이 있으며, 부녀자들이 천궁(川芎)을 댕기머리나 비녀 머리에 꽂고 널을 뛰는 자태는 조선 여인의 전통미라 하겠다. 이 날은 부녀자 위주의 명절이다.

유두

음력 6월 15일을 유두날이라고 하며 이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며 하루를 청유(淸遊) 한다. 그러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용신제(龍神祭) 또는 농신제(農神祭)를 논이나 밭에 가서 지내는 곳도 허다하다. 찰떡을 하여 물꼬 밑과 둑 밑에 한 덩어리씩 놓으며 물이 새지 않고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풍습은 거의 없어졌다.

유두 무렵에는 새로운 과일이 나므로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효성을 드린다는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수박 참외 등을 따고 국수와 떡을 만들어서 사당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6월에는 복날이 있는데, 복에는 초복, 중복, 말복의 3복이 있다. 복날 농촌에서는 복놀이를 하는 곳이 많으며 어른들은 산야를 찾아 들어가서 개장(보신탕)을 끓여서 술을 마신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사기(史記)에 의하면 3복에 제사를 지내는데, 사대문(四大門)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는다고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예부터 개잡는 것은 복날의 행사였고 지금도 복날 개를 잡아먹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한다. 복날의 개장은 보신탕으로서의 영양섭취의 의의가 있는 것보다 붉은 팥죽과 같이 애초에는 잡귀를 물리치는 등 토속적인 의의가 컸다고 한다.

칠석

음력 7월 7일은 농가에서 으레 비 오는 날로 알고 있다.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는 날이라 하여 사람들은 밤에 은하수를 바라보며 두 사람의 해후를 기뻐하고 축복을 하며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다. 밤하늘에 자연의 신비한 견우와 직녀의 별이 해후함은 인간이 갈망하는 숭고한 사랑의 상징이다. 칠석날이 가까우면 까치들은 다리를 놓으러 하늘로 갔다고 하여 보이지 않는데, 칠석날이 지나면 머리가 벗어진 까치를 볼 수 있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이날 수수떡 할멈과 짚신장수 영감이 만난다고 한다.

칠성단에 기름불을 켜 놓고 자손의 장수와 명복을 빌며 무당을 찾아가서 아이를 바위나 고목나무에 파는 관습도 있다. 또한 칠석다례(七夕茶禮)라 하여 햇벼를 사당에 천신하고 부인들은 밤에 까마귀밥이라 하여 음식을 담 위에 올려놓고 집안이 번영하고 자손들이 잘 되라고 빈다.

백중

력 7월 15일, 중원을 우리나라 풍속으로 백중일(百中日)이라고 하는데 대개 정월 보름을 상원이라 하고 7월 보름을 중원, 10월 보름을 하원이라고 하는데, 중원은 1년을 반절할 때 한해 후반의 시작이기도 하여 중요한 시기이지만, 청송지방 전체의 백중은 추석이나 단오일에 비해 한산하여 평일과 다름없이 지낸다. 다만 약간의 양반층 사람들이 모여서 기회로 하루를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칠월초연

옛날에는 농부들이 논밭 일을 거의 마쳐놓고 2~3일간에 걸쳐 술과 떡을 장만하여 놀았는데, 풋굿(草宴)이라고도 하는 민속 행사로 대개 음력 7월 중순경에 행해진다. 이 날은 일꾼들을 위로하는 날이며 농사가 끝났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동리마다 좋은 날을 택하여 윗 어른들 모시고 주연을 베풀며 온종일 농악을 즐긴다. 또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액운을 때우고 행운을 바라는 지신을 밟는다.

추석

음력 8월 15일로 중추절, 가배(嘉俳), 가윗날이라고도 한다. 우리 고유의 가장 알찬 명절로 땀 흘려 지은 농사의 결실을 기뻐하며 햇곡식으로 제수를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지신밟기, 농악 등을 하고 처녀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강가 모래 밭에서 강강술래를 한다.

공자탄신일

음력 8월 27일로, 공자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이날 향교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선산에 벌초하고 성묘한다.

중앙절

9월 9일은 중구(重九) 또는 중양(重陽)이라고 부른다. 중구란 말은 9가 겹쳤다는 뜻이며, 중양이란 양수(陽數)가 겹쳤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마음 놓고 하며 추석에 신곡이 없어 못 지낸 절사를 이날에 추수감사의 뜻으로 조상에 고한다고 한다. 경북지방에서는 이날에 제비가 강남으로 날아간다고 하며, 옛 시인 도연명이 국화주를 해 먹은 날이라고 한다.

10월고사

10월에는 다례(茶禮)와 안택일 등이 있으나 10월 15일을 전후하여 시제(時祭) 또는 시사(時祀)가 있다. 조상신은 4대까지만 사당에서 모시고 4대조 이상의 조상들은 함께 묘제(墓祭)로 지낸다. 이 시제일에는 여러 파로 갈린 각파 친족들이 한 묘전에 모여 참례하는데, 많은 자손들이 모여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묘자리가 명당일수록 후손이 발복된다고 아직도 그 풍수학을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또한 상중에 있는 부녀자들은 참례하지 아니한다. 시제의 비용은 위토가 있어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충당하는 것이 보통인데, 위토는 일문일족이 공존하는 종계(宗契) 또는 문중의 도장손(都長孫) 집에서 문중 재산 자금으로 장만한다.

이 날은 지신, 천신에게 풍년을 감사하고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또 어떤 집에서는 떡과 술 등은 마련하여 문전에 왼 새끼줄을 치고 황토를 10여 군데 깔고 집안을 깨끗이 하여 가족 중 깨끗한 사람이 빌기도 한다.

애동지

24절 조의 하나로, 아주 옛날 태양신을 숭배하던 당시에는 이날은 설날로도 삼았다고도 하며, 고대 황제 헌원 씨의 영식(令息)이 팥을 겁냈으므로 팥으로 죽을 쑤어 뿌린다고 하여 문지방이나 부엌, 대문, 담, 수로 등에도 잡귀나 부정이 타지 못하도록 뿌렸다. 그리고 아기동지 때는 팥죽을 쓰지 않는데 이것은 대개 윤달 드는 해에 많다고 한다. 동지는 12월 22일인데 음력 11월 중 1일에서 9일 사이에 동지가 들면 아기동지라 하여 팥죽을 쓰지 않으며 중순의 중동지, 하순의 노동지에 들어야 팥죽을 쑨다고 한다.

납향

12월은 서웃달 또는 섣달이라고 한다. 섣달에는 납일이 있어서 아직도 이날 돼지고기를 먹는 풍속이 있다. 납일의 행사에 대하여 동국세시기에는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다. 동지 후 제3일을 일리, 납일이라고 하는 바, 이날에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납향이라고 하였는데 납(臘)의 뜻은 사냥하여 짐승을 잡아 선조께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납향(臘享)에 쓰는 고기로는 산돼지와 산토끼를 사용하였다. 경기도 산간의 고을에서는 예로부터 납향에 쓰는 산돼지를 상납하였다고 한다. 청송지방에서는 참새를 잡아 어린이를 먹이면 마마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산간에서는 그물을 쳐서 새를 잡기도 하고 총으로 잡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납일 무렵에는 마을 부근에서는 참새를 좀체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