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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

민속놀이

연 날리기

정월 보름날에는 연에다 제 생년월일을 써서 실에다 솜을 감고 불을 붙여서 하늘 높이 띄워서 날려보내 버린다. 그러면 액운이 멀리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연의 종류에는 꼬리가 길게 달린 가오리연과 창연(봉창연이라고도 함)등이 있는데 봉창연은 세로의 대비는 1:2로 장방형으로 대나무나 싸리를 가늘게 쪼개여 쌀미자형으로 골격을 만드는데 한가운데 구멍을 뚫는다. 가오리연은 가오리 모양의 머리 부분을 제외한 양쪽에 꼬리를 달되 끝부분의 꼬리는 양쪽 꼬리보다 훨씬 길다. 좋은 연이란 살을 고르게 깎고 균형을 잘맞춰 바닥에 내려놓으면 네 면이 바닥에 고루 닿아야 한다.

윷놀이

윷놀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간 오락으로서 그 유래가 깊고 그 분포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지금까지도 성행되고 있다. 마당에서 멍석을 깔고 노는 윷은 굵은 싸리나무나 밤나무로 만든 것으로 한 손으로 거머쥐기 거북한 것이고 안방에 여성들이 노는 윷은 아담하여 매끄럽고 예쁘게 다듬어진 것이다. 윷은 원래 중국에서 저포 즉 저 목포의 열매를 쪼개서 승부의 재료로 삼는 놀음의 일종으로 시행되었는데 이 저포 놀음은 고대 중국에서는 금지 되어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저포를 본떠서 윷을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저포송이라 하기보다는 윷노래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씨름

5월의 단오와 8월 추석 때에는 씨름대회가 벌어져서 힘과 슬기를 겨루는데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쥐고 서로 껴안고 힘을 겨루어 싸우는데 모이 먼저 땅에 닿는 사람이 지게 된다. 그러므로 배치기 엎치기 잡치기 안다리 감기 밖 다리 감기 등 기술이 다양하고 힘이 있어야 한다. 옛날 청송지방에서도 일 년에 한 차례씩은 씨름대회가 있었는데 특히 재넘어 현서 현동에 이름난 장사가 있었다.

팽이치기

겨울철에 소년들 사이에 핑딩 돌리기를 한다. 박달나무 등 단단하고 둥근 것을 15cm 정도 잘라서 끝을 뾰족하게 깎아만들어 챙이 채 줄을 팽이 몸에 감고 돌린다. 핑딩은 외따로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게 해서 누가 먼저 넘어지나 내기도 하고 키가 작은 것 큰 것 등 다양하게 만들어서 곱게 색깔도 칠해서 아름다운 문양을 낸다.

지신밟기

청송지방에서는 정월대보름부터 2월까지 명절 휴일 동안에 농민들로부터 이루어지는 명절 축제의 고유 행사였다. 지금도 산간 부락에서 공식적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지신을 밟기 위해 주인이 없는 집에 들어가도 아무런 허물없이 생각하는 미풍 양속의 고유의 민속놀이이다.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청송지방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은 알 수 없느냐 오랜 옛날부터 시작되여 지금까지 민속행사 때에는 대표적인 행사의 하나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평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마을 사람들의 공동 축제의 하나로, 옛날 정월대보름에 줄다리기 행사 때에는 인근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 군의 친척들까지도 며칠 전부터 모여들어 온 동네는 온통 축제 분위기를 이룬다. 아이들은 정초부터 짚을 모아 골목길에 모여 줄을 당긴다. 이것을 아기 줄이라 하는데 이 새기 줄 이 이어서 결국은 큰 줄 당기기 행사가 된다.

줄다리기는 보통 강변에서 이루어지는데 아래 윗동네 별로 편을 가르고 며칠 전부터 줄다리기 분위기에 휩싸여 신경전까지 부리기도 한다. 줄은 암줄과 수줄로 만들어져서 암줄은 수줄의 머리가 들어 가게 원형으로 만들어지며 몸체는 그네 줄 정도로 굵게 꼬아서 여러 가닥이 어울려서 큰 줄이 된다. 줄이 완성되면 꼭 용의 형상과 같이 몸체는 굵고 꼬리는 가늘어 마치 거대한 동물과 같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농악이 울려 퍼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경꾼들로 인신 인해를 이룬다. 이윽고 상쇠의 신호에 다라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을 바라보고 재를 올린다.

이는 오늘의 위대한 행사를 수호신에게 알리고 마을의 평화를 빈다. 제가 끝나면 동민이 줄에 매달려 전투태세를 취한다. 이때부터 적을 위협하는 "어이 사" "우우우" 고함을 지르며 줄을 매고 원을 그리기도 하고 상대편과 부딪치기도 하여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서로 미지기 싸움도 하고 이어서 오늘의 행사가 화합하고 보람 있는 행사가 되어 달라고 마을 대표자가 나와서 인사말이 끝나면 드디어 수줄을 암줄에다 기우고는 참나무 방망이로 줄이 빠지지 않게 단단히 끼우고는 징을 크게 세 번 울리면 그 신호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줄 싸움은 수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이는 봉건시대 남성 우위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일제시대 때에는 군중의 봉기가 두려워서 줄다리기 행사를 못하게 하였으나 우리 조상 때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행사를 그 지독한 식민 정치의 강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결같이 이어온 우리 민족의 끈기 있는 계승 정신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 이곳이 정착한 우리 조상들은 피땀을 흘려 일해왔으나 매년 흉년이 들고 질병마저 겹쳐서 처참한 생활이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한 결과 인조 때 풍수 성리 도사를 모셔와 성황당 자리를 정하고 마을에 풍년이 깃들고 질병을 없애 달라고 고사를 올리던 중 그날 새벽 앞산 마루에서 신령의 계시가 있었으니 왈 "이곳은 나의 땅이거늘 너희들이 함부로 사용하여 나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제부터 너희들이 앞길을 이끌어 주겠노라. 그것은 다름 아닌 너희들의 단결이니라 그러니 매년 정월 보름날 바로 이 앞 냇가에서 줄을 다리도록 하라."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매년 신령께 알리기 위해 자신을 밟고 물의 흐름에 따라 아래 위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여 액운을 면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